위험(Risk)이라는 단어에는 어떤 모던한 느낌이 있다. 미래적 사유의 긴장감마저 느껴진다. SF 액션영화 뿐 아니라 올여름 극장가를 점령하게 될 이른바 납량영화들은 외계 생명체나 강력 범죄 또는 환경의 ‘위험’이 주어지고 이를 해결해가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여기서 한가하게 영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세월호 참사와, 지난해 메르스 사태 이후 이제 조류독감(AI)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오늘, 언론은 위험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이것이 중요하다. 위험의 인지와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데 막중한 책임을 갖는 언...
아담과 이브, 그리고 쾌락주의로 매도되어 가끔씩 욕도 먹는 에피쿠로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인류 최초로 “그것”의 중요성을 알았다는 점이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라면 신의 세계에 속한 아담과 이브는 최초로 그것을 알았고, 인간 세계에 속한 철학자로선 에피쿠로스가 그것의 의미를 최초로 깨달았다. 여기서 말하는 그것이란? 답은 쉽다. 예컨대 독일처럼 4주간 휴가를 간다고 상상해보라. 당신이 꿈에 그리던 휴양지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하루 종일 게으름을 피우며 멍때리거나 마음껏 논다고 생각해 보라. 천국이 따로 없다고 느끼지...
“No라는 정치인에 대한 민심의 지지율이 늘고 있다” - 이것은 언론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정치보도의 내용이다. 주군의 지지율이 올라간다니 No의 지지세력은 환호할지 모른다. 민심을 먹고 사는 정치가 언론보도에 관심을 갖는 까닭이다. 여기 문제는 과연 언론이 민심을 반영하느냐 아니냐이다. 언론보도는 과연 민심과 일치할까. 예컨대, 나는 잔인한 살인 사건을 직접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자동차끼리 충돌하는 끔찍한 장면도 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나는 그런 사건·사고가 일어날까 두려운 마음 없지 않다. 당신도 크게 다르지는 않...
물건이 욕망을 만들어낼까, 아니면 욕망이 물건을 만들어낼까? 애매모호하면, 물건 대신 상품이라고 해보자. 양자의 차이는 구매자가 전제되느냐의 차이다. 정성들여 만든 물건은 본인이 직접 사용하거나 가까운 친구에게 그냥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상품은 판매를 전제로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그 성격이 완전 다르다. 그러니까 상품은 그것을 구매하는 사람의 욕망을 전제로 만들어진다. 판매를 위해서라면 ‘없던’ 욕망도 만들어내야 한다. 이렇게 상품이 욕망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을 우리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라고 부른다. 그런데, 없던 욕망은 누가 만...
“생산비를 줄이시려면 오늘 당장 로봇 하나 장만하세요! 로봇이야말로 제일 싼 값으로 노동력을 제공해드리거든요” 체코 작가 카렐 차페크Carel Čapek는 그의 작품 R.U.R(Rosuum's Universal Robots)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1920년대 작품인데, 그는 여기서 로봇이란 말을 처음으로 사용해 세상에 알린 작가이다. 로봇은 체코어로 노동을 의미하는 단어 'robota'에서 온 말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로봇은 독일어, 영어, 불어 그리고 체코어 등 4개 국어를 사용한다. 차페크의 로봇이 출현한 이후 100여 ...
가벼운 연애, 권력의 암투, 섹시한 음모론 같은 선정적인 방송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일이다. 연애, 권력, 숨겨진 이야기들을 늘 일상에서 접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문제는 방송이 다른 무엇보다 이런 심리를 무분별하게 이용한다는 사실이다.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듯 그것은 물론 시청률 때문이다. 방송의 철학은 점점 더 사라지고 자극적인 내용은 점점 더 많아진다. 예컨대 우리 사회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프로그램이 많을까, 가벼운 오락 프로그램이 많을까. 후자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역시 누구나 쉽게 알 수 ...
돈을 잘 벌고 마음에 드는 상품을 부담없이 소비하는 삶은 오늘 정당할 뿐만 아니라 아주 즐거운 것이다. 개취 - 개인의 취향 - 에 따라 이루어지는 맞춤형 소비에는 아무런 책임도 동반되지 않는다. 권리만 있고 의무는 없는 안락한 자본주의의 일상이다. 다만 정보상품, 그중에서도 뉴스에 관해서는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수많은 상품처럼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뉴스의 소비에는 다소 황당하게도 책임이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대체 그것은 어떤 책임일까. 우선 뉴스의 특성부터 보자. 말과 영상으로 된 뉴스는 다른 상품과 ...
요즘 같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인기가 조금 시들해졌지만, 그래도 역사나 이념 관련 분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전문가 한분이 계시다. 이 ‘이념 전문가’는 ‘정신현상학’이라는 대작을 집필하신 저 유명한 독일의 대철학자 헤겔이다. 물론, 문화예술계 일각에서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말이 나타날 정도로 이념이 종언을 고한지가 오래된데다, 방송계 처리할 사안도 산적해 있어서 이 모더니즘 철학자에 대해 갑론을박할 만큼 방송문화계가 한가하지는 않다. 예컨대 오늘 방송계 종사자들은 이른바 포스트TV 시대에 본질적으로는 ‘현상’만 남아...
이성 아닌 느낌으로 판단하는 세태의 상징어, ‘포스트팍티쉬(postfaktisch)’ 지난해 독일은 올해의 단어로 “포스트팍티쉬(postfaktisch)”를 선정했다. 우리말로 하면, “탈(脫)팩트” 정도가 되겠다. 객관적 팩트가 아닌 주관적 감성에, 이성보다 감성에 치우친 결정이 횡행하는 세태가 반영된 것으로, 독일은 지난 70년대부터 매년 독일언어협회에서 올해의 단어를 선정하고 있다. 이 ‘탈팩트’라는 신조어에는 무엇보다 “팩트스런 느낌”을 중요하게 여기고 판단하는 후기자본주의적인 일상의 한 단면이 담겨 있다. 언론에서 ‘...